<?xml version="1.0" encoding="UTF-8"?><rss xmlns:dc="http://purl.org/dc/elements/1.1/" xmlns:content="http://purl.org/rss/1.0/modules/content/" xmlns:atom="http://www.w3.org/2005/Atom" version="2.0"><channel><title><![CDATA[바람과 불꽃교회 TOKYO]]></title><description><![CDATA[바람과 불꽃교회 TOKYO]]></description><link>https://www.windfire-tokyo.org/pastorcolumn</link><generator>RSS for Node</generator><lastBuildDate>Tue, 07 Apr 2026 08:45:52 GMT</lastBuildDate><atom:link href="https://www.windfire-tokyo.org/ja/blog-feed.xml" rel="self" type="application/rss+xml"/><item><title><![CDATA[2026.04.05 復活されたイエスキリスト]]></title><description><![CDATA[イエスキリストの復活は、神秘の中の神秘です。神秘を検索してみると「人間の力や知恵または一般的な理論と常識では理解や説明ができないほど不思議なこと、またはその様」と定義しています。そうであればキリスト者に与えられた神秘とはなんでしょうか？聖書はこのように語られています。“神が永遠のいのちをわたしたちに賜わり、かつ、そのいのちが御子のうちにあるということである。”（ヨハネの第一の手紙5:11）永遠は人間の死を前提としています。堕落した人間に与えられた変わらない真理があります。それは全ての人は死を迎えるという事実です。その死の真理をまるで証明するように人は誰でもこの世を去っていきます。ソロモンは死の前にして私たちが生きている世に向かってこのように告白します。“空の空、空の空、いっさいは空である。”（伝道の書1:2）ソロモンのように人生の虚しさを悟るときに真理がより近く感じられます。永遠の命と復活は倫理を悟るものだけが享受することができる特権です。そのため、キリスト者の人生には言葉では説明することが難しい深さがあります。人々が終わりだと思ったとき神様は始める準備をなさるからです。それをイ...]]></description><link>https://www.windfire-tokyo.org/ja/post/2026-04-05-%E5%BE%A9%E6%B4%BB%E3%81%95%E3%82%8C%E3%81%9F%E3%82%A4%E3%82%A8%E3%82%B9%E3%82%AD%E3%83%AA%E3%82%B9%E3%83%88</link><guid isPermaLink="false">69d228a2f7044e6cf7af284e</guid><category><![CDATA[主日メッセージ]]></category><pubDate>Sun, 05 Apr 2026 09:17:23 GMT</pubDate><dc:creator>windfiremeguro</dc:creator></item><item><title><![CDATA[2026.04.05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title><description><![CDATA[그리스도 예수의 부활은 신비 중의 신비입니다. 신비를 검색해 보면 “인간의 힘이나 지혜 혹은 일반적인 이론과 상식으로는 이해하거나 설명할 수 없을 만큼의 묘한 현상이나 사실”이라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신비란 무엇일까요?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 이니라”(요일5:11) 영생은 인간의 죽음을 전제로 합니다. 타락한 인간에게 주어진 변치 않는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인간은 죽음을 맞는다는 사실입니다. 그 죽음의 진리를 증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인간은 누구나 이 세상에서 떠나갑니다. 솔로몬은 죽음 앞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향해 이렇게 고백합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1:2) 솔로몬처럼 인생의 허무함을 깨달을 때 진리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습니다. 영생과 부활은 진리를 깨달은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그러하기에 그리스도인의...]]></description><link>https://www.windfire-tokyo.org/post/2026-04-05-%EB%B6%80%ED%99%9C%ED%95%98%EC%8B%A0-%EC%98%88%EC%88%98-%EA%B7%B8%EB%A6%AC%EC%8A%A4%EB%8F%84</link><guid isPermaLink="false">69d22837535e7bcd269e8245</guid><category><![CDATA[주일 칼럼]]></category><pubDate>Sun, 05 Apr 2026 09:15:36 GMT</pubDate><dc:creator>windfiremeguro</dc:creator></item><item><title><![CDATA[2026.04.04]]></title><description><![CDATA[할렐루야! 오늘은 고난 주간 마지막 토요일입니다 믿음의 선배들은 오늘을 "성 토요일(HolySaturday)"이라 말하며 부활을 준비하는 "침묵과 기다림"의 시간으로 인식해 왔습니다 기독교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성경은 그 비밀인 사랑과 은혜를 이렇게 함축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 사랑을 확증 하셨느니라"(롬5:8) 토요일이 지나면 반드시 일요일이 오는 것처럼 무덤은 부활을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부활은 상징이나 신화가 아니라 실제로 일어난 역사상의 사건입니다. "빈 무덤"(요20:6-7)이 그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고전15:3-8) "게다가 두려워 떨며 숨어있던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자 목숨을 걸고 "예수를 그리스도"(행5:42)라 전하며 증언하는 사람으로 변합니다 부활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절망 속에서도 소망을 보며...]]></description><link>https://www.windfire-tokyo.org/post/2026-04-04</link><guid isPermaLink="false">69d267fa535e7bcd269ee1eb</guid><category><![CDATA[토요 묵상]]></category><pubDate>Sat, 04 Apr 2026 13:48:34 GMT</pubDate><dc:creator>windfiremeguro</dc:creator></item><item><title><![CDATA[2026.03.29 ホサナ、ダビデの子よ（マタイの福音書21:9）]]></title><description><![CDATA[今日は何の日でしょうか？神様の救いのご計画がクライマックスへと向かう受難の主日です。主はご自身に与えられた最大の働きである十字架につけれらるためにエルサレムに入られます。それを聖書はこのように記しています。“キリストは、神のかたちであられたが、おのれを低くして、死に至るまで、しかも十字架の死に至るまで従順であられた。”（ピリピ人への手紙2:6~8）十字架は単純に宗教的な象徴を超えて人間の存在と人生の方向について重みのある答えを提示します。イエスキリストの十字架の死は人類を救うための“神様の力”（コリント人への第一の手紙1　1:8）だからです。今日私たちの人生をのぞいてみると外見では豊かに見えますが、内面は不安と傷でいっぱいです。激しい競争の中で関係の断絶と孤独によって疲れ果てています。それをハン・ビョンチョル教授は『疲労社会』の本の中でこのように語っています。“より高い実績を積み上げるために自分に鞭を打っている”その結果、人間の魂はだんだん虚しくなっていくばかりです。物は私たちの生活は楽にしてくれますが、人生に意味を与えることはできないからです。このような私たちにイエス様はこのよ...]]></description><link>https://www.windfire-tokyo.org/ja/post/2026-03-29-%E3%83%9B%E3%82%B5%E3%83%8A%E3%80%81%E3%83%80%E3%83%93%E3%83%87%E3%81%AE%E5%AD%90%E3%82%88%EF%BC%88%E3%83%9E%E3%82%BF%E3%82%A4%E3%81%AE%E7%A6%8F%E9%9F%B3%E6%9B%B821-9%EF%BC%89</link><guid isPermaLink="false">69c94856495b61304353dc4e</guid><category><![CDATA[主日メッセージ]]></category><pubDate>Sat, 28 Mar 2026 15:00:00 GMT</pubDate><dc:creator>windfiremeguro</dc:creator></item><item><title><![CDATA[2026.03.29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마21:9)]]></title><description><![CDATA[오늘은 무슨 날일까요?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절정으로 향하는 고난주일입니다. 주님은 자신에게 주어진 최대의 사역인 십자가를 지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십니다. 그것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였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6-8) 십자가는 단순한 종교적 상징을 넘어 인간의 존재와 삶의 방향에 대한 묵직한 답을 제시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능력”(고전1:8)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을 들여다보면 겉으로는 풍요로운 것 같지만 내면은 불안과 상처로 가득합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관계의 단절과 외로움으로 지쳐있습니다. 그것을 한병철 교수는 “피로사회”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높은 실적을 쌓기 위해 스스로 자신을 채찍질하고 있다” 그 결과 인간의 영혼은 점점 더 공허해져만 갑니다. 물질은 우리의 삶을 편안하게 하지만 삶의 의미는 주지 못하기...]]></description><link>https://www.windfire-tokyo.org/post/2026-03-29-%ED%98%B8%EC%82%B0%EB%82%98-%EB%8B%A4%EC%9C%97%EC%9D%98-%EC%9E%90%EC%86%90%EC%9D%B4%EC%97%AC-%EB%A7%8821-9</link><guid isPermaLink="false">69c948226fd5abf58033f0f0</guid><category><![CDATA[주일 칼럼]]></category><pubDate>Sat, 28 Mar 2026 15:00:00 GMT</pubDate><dc:creator>windfiremeguro</dc:creator></item><item><title><![CDATA[2026.03.22 春分を過ぎて、春を迎えながら]]></title><description><![CDATA[先週金曜日（20日）は昼と夜の長さが同じになる春分の日でした。私たちが暮らす北半球では春分は春を知らせる節目であり、農村では播種の準備を始めるようになります。自然は春分を起点として新しい季節が始まります。死んだように見えていた木が新芽を芽吹かせています。今年もまた目黒川に春が訪れました。コロナ以降中断されていた春を迎える行事のために灯りが設置されているのを見ました。川辺に沿って並んでいる赤と白が調和した灯りが私に向かってもう一度始めてみなさいと励ましているようです。聖書は私たちにこのように語られます。“わたしは新しい事をなす”（イザヤ書43:19）神様はいつも私たちを新たにしてくださいます。冬のような人生にも春をもたらしてくださいます。もしかすると、私たちの中でまだ冬を手放せずにもがいている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私たちがすべきことは、新しさに向かって一歩前に踏み出すことです。暖かな陽ざしは、もうすでに私たちのそばに届いています。そのような主の愛を受けた私たちは、その愛をもって互いに励まし、仕える小さな行いを通して誰かの春になることができるでしょう。神様は私たちに新しいことを与えま...]]></description><link>https://www.windfire-tokyo.org/ja/post/2026-03-22-%E6%98%A5%E5%88%86%E3%82%92%E9%81%8E%E3%81%8E%E3%81%A6%E3%80%81%E6%98%A5%E3%82%92%E8%BF%8E%E3%81%88%E3%81%AA%E3%81%8C%E3%82%89</link><guid isPermaLink="false">69bfa79f6e2d8139248e9bcf</guid><category><![CDATA[主日メッセージ]]></category><pubDate>Sun, 22 Mar 2026 08:26:08 GMT</pubDate><dc:creator>windfiremeguro</dc:creator></item><item><title><![CDATA[2026.03.22 춘분을 지나 봄을 맞으며]]></title><description><![CDATA[지난 금요일(20일)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춘분이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북반구에서 춘분은 봄을 알리는 시점으로 농촌에서는 파종준비를 하게 됩니다. 자연은 춘분을 기점으로 새로운 계절을 시작합니다. 죽어 있는 것처럼 보이던 나무가 새싹을 보이고 있습니다. 금년에도 변함없이 메구로 강가에 봄이 찾아왔습니다. 코로나이후 중단이 되었던 봄맞이 행사를 위해 등불을 설치해 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강변을 따라 늘어서 있는 빨갛고 하얀색이 어우러진 등불이 저를 향해 다시 시작해 보라고 격려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사43:19)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새롭게 하십니다. 겨울 같은 인생에도 봄을 허락해 주십니다. 혹 우리 중에 아직도 겨울을 붙들고 씨름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새로움을 향해 한 걸음 앞으로 내딛는 것입니다. 따뜻한 햇살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습니다....]]></description><link>https://www.windfire-tokyo.org/post/2026-03-22-%EC%B6%98%EB%B6%84%EC%9D%84-%EC%A7%80%EB%82%98-%EB%B4%84%EC%9D%84-%EB%A7%9E%EC%9C%BC%EB%A9%B0</link><guid isPermaLink="false">69bfa77460de372da57790f9</guid><category><![CDATA[주일 칼럼]]></category><pubDate>Sun, 22 Mar 2026 08:25:25 GMT</pubDate><dc:creator>windfiremeguro</dc:creator></item><item><title><![CDATA[2026.03.15 戦争と戦争のうわさ（マタイの福音書24:6）]]></title><description><![CDATA[過ぎた2月28日（土）アメリカとイスラエルはイランに対して合同空襲を敢行したため戦争が始まりました。世界の視線はすべて中東に向けられています。歴史学者たちは人類の歴史は戦争の歴史だと言います。ローマ時代にも戦争がありましたし、中世時代はもちろん近代と現代にも戦争は続いています。争いは争いを生み、戦争はまた別の戦争を引き起こします。その戦争の原因は大きく二つにまとめることができます。一つは誤った信仰と宗教の結果であり、またもう一つは人間の貪欲と自己中心的な思考から生じています。正しい戦争なのか？それとも不正な戦争なのか？という評価と価値の判断は別として、戦争は当事者はもちろん、すべての人類に大きな被害と苦しみをもたらします。信仰がない世の人々も今日のありさまを「末世」だと言っており、霊的に目覚めている神様の人たちも主が来られる時が過去のどの時よりも近いと声を一つにして叫んでいます。イエス様は末世の前兆として“戦争と戦争のうわさとを聞くであろう。民は民に、国は国に敵対して立ち上がるであろう。またあちこちに、ききんが起り、また地震があるであろう。”（マタイの福音書24章6,7）があるだ...]]></description><link>https://www.windfire-tokyo.org/ja/post/2026-03-15-%E6%88%A6%E4%BA%89%E3%81%A8%E6%88%A6%E4%BA%89%E3%81%AE%E3%81%86%E3%82%8F%E3%81%95%EF%BC%88%E3%83%9E%E3%82%BF%E3%82%A4%E3%81%AE%E7%A6%8F%E9%9F%B3%E6%9B%B824-6%EF%BC%89</link><guid isPermaLink="false">69b6c22855878d6d48368d0d</guid><category><![CDATA[主日メッセージ]]></category><pubDate>Sun, 15 Mar 2026 14:28:57 GMT</pubDate><dc:creator>windfiremeguro</dc:creator></item><item><title><![CDATA[2026.03.15 “난리와 난리의 소문”(마24:6)]]></title><description><![CDATA[지난 2월 28일(토)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에 대한 합동 공습을 감행하므로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세계의 시선이 모두 중동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역사학자들은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말합니다. 로마시대에도 전쟁이 있었고 중세 시대는 물론 근대와 현대에도 전쟁은 계속이 되고 있습니다. 싸움은 싸움을 낳고 전쟁은 또 다른 전쟁을 불러옵니다. 그 전쟁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잘못된 신앙과 종교의 결과이며 또 다른 하나는 인간의 욕심과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비롯합니다. 의로운 전쟁인가? 혹은 불의한 전쟁인가? 라는 평가와 가치판단은 차치하더라도 전쟁은 당사자는 물론 모든 인류에게 큰 피해와 고통을 줍니다. 믿음이 없는 세상 사람들도 오늘날의 세태를 가리켜 말세라 말하고 있고 영적으로 깨어있는 하나님의 사람들도 주님이 오실 때가 과거 어느 때보다도 가까웠다고 이구동성으로 외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세의 징조로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들을 것이고...]]></description><link>https://www.windfire-tokyo.org/post/2026-03-15-%EB%82%9C%EB%A6%AC%EC%99%80-%EB%82%9C%EB%A6%AC%EC%9D%98-%EC%86%8C%EB%AC%B8-%EB%A7%8824-6</link><guid isPermaLink="false">69b6c1fa30db5401f4efbb53</guid><category><![CDATA[주일 칼럼]]></category><pubDate>Sun, 15 Mar 2026 14:28:11 GMT</pubDate><dc:creator>windfiremeguro</dc:creator></item><item><title><![CDATA[2026.03.08 キリストを信じる者の香り]]></title><description><![CDATA[冬眠をしていた動物たちが暖かい陽気によって目が覚めたという啓蟄（3月5日）が過ぎました。まだ風は冷たいけれど、その中には確かに春の息吹が感じられます。自然が覚めるこの季節に私たちの信仰も共に目覚めることをお祈りいたします。土の中の命が暖かい春風によってうごめくように私たちの魂も神様の愛と御恵みによって再びよみがえ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外からは少し冷たく見えるかもしれませんが、心の底から新しい決心と祈りの火が灯ったならば、もうすでに春は始まっているのです。造花は華やかで美しく見えますが、蜂や蝶はやって来ません。香りがないからです。人々は不思議に華やかな所には集まりますが、香りがする所にはあまり関心を持ちません。その理由はなんでしょうか？内面から漂う香りよりも外から見える華やかさにより心が引かれるからです。しかし、私たちはそのようにしてはなりません。キリスト者なら”キリストを知る知識の香り ”（コリント人への第二の手紙2:14）を放つべきです。もし私の周りの人々が私からその香りがまったく感じられない、あるいはほとんど感じられないなら悔い改めなければなりません。華やかな色に酔って香りの...]]></description><link>https://www.windfire-tokyo.org/ja/post/2026-03-08-%E3%82%AD%E3%83%AA%E3%82%B9%E3%83%88%E3%82%92%E4%BF%A1%E3%81%98%E3%82%8B%E8%80%85%E3%81%AE%E9%A6%99%E3%82%8A</link><guid isPermaLink="false">69ad3d32d66894c6d6f839ca</guid><category><![CDATA[主日メッセージ]]></category><pubDate>Sun, 08 Mar 2026 09:11:15 GMT</pubDate><dc:creator>windfiremeguro</dc:creator></item><item><title><![CDATA[2026.03.08 예수 믿는 자의 향기]]></title><description><![CDATA[겨울잠을 자던 동물들이 따뜻한 날씨로 깨어난다는 경칩(3월 5일)이 지나갔습니다. 아직 바람은 차갑지만 그 속에는 분명 봄의 숨결이 실려 있습니다. 자연이 깨어나는 이 계절에 우리의 신앙도 함께 깨어나기를 기도합니다. 땅 속의 생명들이 따뜻한 봄바람으로 꿈틀거리는 것처럼 우리의 영혼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다시 살아나야 합니다. 겉으로는 조금 차갑게 보이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새로운 결심과 기도의 불이 붙었다면 이미 봄이 시작된 것입니다. 조화는 화려하고 아름답게 보이지만 벌과 나비가 찾아오지 않습니다. 향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화려한 곳에는 몰려들지만 향기가 나는 곳에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내면에서 풍겨 나오는 향기보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에 더 마음이 끌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달라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고후2:14)를 풍겨야 합니다. 만약 내 주위의 사람들이 나로부터 그 냄새를...]]></description><link>https://www.windfire-tokyo.org/post/2026-03-08-%EC%98%88%EC%88%98-%EB%AF%BF%EB%8A%94-%EC%9E%90%EC%9D%98-%ED%96%A5%EA%B8%B0</link><guid isPermaLink="false">69ad3d0a1b8e90b2a7e5699d</guid><category><![CDATA[주일 칼럼]]></category><pubDate>Sun, 08 Mar 2026 09:10:37 GMT</pubDate><dc:creator>windfiremeguro</dc:creator></item><item><title><![CDATA[2026.03.01 교회설립 19주년을 맞으며]]></title><description><![CDATA[할렐루야! 동경 메구로에 바람과 불꽃교회를 세워주시고 오늘까지 함께 해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일본 47개 토후도현에 교회를 세워 나가는 비전과 “주의 뜻을 행하는 교회”(시143:10)가 되기 위해 한 마음으로 달려온 바람과 불꽃교회 가족들에게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흘려주신 피와 땀으로 오늘의 교회가 되었습니다. 교회에 들어올 때마다 여기저기에 스며든 성도들의 간절한 기도와 서로의 아픔과 상처들을 다독여주는 따뜻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언제나 앞장서서 기쁘게 섬겨주신 여러분들께 다시 한 번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교회 설립 19주년을 맞아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를 생각해 봅니다. 진정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롬1:4)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그 복음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바람과 불꽃교회를 세워 주셨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어가며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description><link>https://www.windfire-tokyo.org/post/2026-03-01-%EA%B5%90%ED%9A%8C%EC%84%A4%EB%A6%BD-19%EC%A3%BC%EB%85%84%EC%9D%84-%EB%A7%9E%EC%9C%BC%EB%A9%B0</link><guid isPermaLink="false">69a4dee360298c02e5bdb734</guid><category><![CDATA[주일 칼럼]]></category><pubDate>Sun, 01 Mar 2026 00:50:46 GMT</pubDate><dc:creator>windfiremeguro</dc:creator></item><item><title><![CDATA[2026.03.01 教会の設立19周年を迎えながら]]></title><description><![CDATA[ハレルヤ！東京目黒に「風と火花の教会」を建ててくださり、今日まで共におられた主を賛美致しまします。日本47都道府県に教会を建てるビジョンと“主のみこころに従う教会”（詩篇143:10）になるために一つの心で共に歩んでこられた「風と火花の教会」の家族の皆様に心より深く感謝申し上げます。神様の御恵と皆さまお一人おひとりが流してくださった血と汗によって、今日の教会が築かれました。教会に入るたびにあちらこちらに染み渡る信徒の皆さまの切なる祈りと、互いの痛みや傷を優しく包み込む温かい心が感じられます。いつも先頭に立って喜んで仕えてくださった皆さまに、あらためて心からの感謝の気持ちをお伝えいたします。教会の設立19周年を迎え、神様が望まれる教会とはどのような教会なのかを改めて思い巡らしています。誠なる教会は”イエスキリストは神のひとり子である”（ローマ人への手紙1:4）をもって信仰を告白します。その福音を伝えるために神様は「風と火花の教会」を建ててくださいました。”過ちと罪によって死んでいき、この世の流れに従い、空中の権威を持つ者に従う”（エペソ人への手紙）おろかな者たちに希望を伝えるのがキ...]]></description><link>https://www.windfire-tokyo.org/ja/post/2026-03-01-%E5%8D%94%E4%BC%9A%E3%81%AE%E8%A8%AD%E7%AB%8B19%E5%91%A8%E5%B9%B4%E3%82%92%E8%BF%8E%E3%81%88%E3%81%AA%E3%81%8C%E3%82%89</link><guid isPermaLink="false">69a4df2060298c02e5bdb7d2</guid><category><![CDATA[主日メッセージ]]></category><pubDate>Sat, 28 Feb 2026 15:00:00 GMT</pubDate><dc:creator>windfiremeguro</dc:creator></item><item><title><![CDATA[2026.02.22 言葉の力]]></title><description><![CDATA[2月最後の終日です。２月は28日までで1年中最も短い月になります。そのせいか、あっという間に過ぎてしまった気がします。先週は韓国の旧正月で5日連休がありました。旧正月を迎えると誰でも会う人たちにお祝いの言葉をかけます。その言葉を聞いた人はなんだか嬉しくなります。言葉は単なる音の波ではなく、誰かの人生を傷つけたり後押しをしたりする力を持っています。言葉は物理的な力よりもっと強く人を動かす動機にもなりますが、時には目に見えない凶器となって、魂を傷つけてしまうことも少なくありません。それで今日の本文はこのようにはこのように記されております。“優しい舌は命の木である、乱暴な言葉は魂を傷つける。”（箴言15章４節）仲の良かった友人関係がこじれてしまう原因は言葉によるものが多いです。言葉による傷はとても長く心に残ります。そのことを例えて、唇の30秒が心の30年という言葉があります。否定的な言葉や非難は相手を傷つける前に、まず自分自身の心を汚してしまいます。しかし暖かくて勇気を与える言葉は、その人の心を癒す前に、自分自身の品格を高めてくれます。聖書は私たちにこのように警告しています。“もし人が...]]></description><link>https://www.windfire-tokyo.org/ja/post/2026-02-22-%E8%A8%80%E8%91%89%E3%81%AE%E5%8A%9B</link><guid isPermaLink="false">699da95bbf1bf6f6a2a3b7ed</guid><category><![CDATA[主日メッセージ]]></category><pubDate>Tue, 24 Feb 2026 13:36:31 GMT</pubDate><dc:creator>windfiremeguro</dc:creator></item><item><title><![CDATA[2026.02.22 언어의 힘]]></title><description><![CDATA[2월 마지막 주일입니다. 2월은 28일로 1년 중 가장 짧은 달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금방 지나간 것 같습니다. 지난주는 한국의 설날 명절로 5일 연휴가 있었습니다. 설날을 맞으면 누구나 만나는 사람들에게 덕담을 건네게 됩니다. 그 말을 들은 사람은 괜히 기뻐집니다. 말은 단순히 소리의 파동이 아니라 누군가의 인생을 망치기도 하고 세워주기도 하는 힘이 있습니다. 말은 물리적인 힘보다 더 강하게 사람을 움직이는 동기가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보이지 않는 흉기가 되어 영혼을 망가뜨리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온순한 혀는 곧 생명나무이지만 패역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잠15:4) 사이가 좋았던 친구관계가 어긋나게 되는 것은 말로 인한 것이 대부분입니다. 말이 주는 상처는 아주 오래갑니다. 그래서 입술의 30초가 가슴의 30년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정적인 언어와 비난은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 전에 먼저 자신의 정신을 오염시킵니다....]]></description><link>https://www.windfire-tokyo.org/post/2026-02-22-%EC%96%B8%EC%96%B4%EC%9D%98-%ED%9E%98</link><guid isPermaLink="false">699da86891604ab56c3188f4</guid><category><![CDATA[주일 칼럼]]></category><pubDate>Tue, 24 Feb 2026 13:32:30 GMT</pubDate><dc:creator>windfiremeguro</dc:creator></item><item><title><![CDATA[2026.02.15 소금과 빛]]></title><description><![CDATA[2월의 중순을 지나자 봄의 기운이 꿈틀거리기 시작합니다. 겨우내 추위로 꼼짝 못하던 땅이 기지개를 펴고 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누구나가 혹독한 겨울을 경험하게 됩니다. 성경에 기록된 ‘믿음의 선진들’(히11:2)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믿는 모든 자의 조상”(롬4:11)이라 불리는 아브라함을 비롯해서 모세와 다윗 그리고 바울도 냉혹한 인생의 겨울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믿음으로 다시 일어섰습니다. 우리의 신앙여정에서도 꼭 필요한 것은 다시 일어 설 수 있는 힘입니다. 그 힘은 단숨에 금방 생겨나지 않습니다.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히12:1)의 삶을 묵상해 보면 하나님의 섭리의 때가 올 때까지 참고 또 참아내며 견디어 냈습니다. 프랑스의 작가이자 언론인이며 비행사였던 생떽쥐페리는 이런 말을 남깁니다. “지도를 보면서 하룻밤을 꼬박 새웠다. 그러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길을 잃었을 때는 나침반이 필요한...]]></description><link>https://www.windfire-tokyo.org/post/2026-02-15-%EC%86%8C%EA%B8%88%EA%B3%BC-%EB%B9%9B</link><guid isPermaLink="false">6991b441e585eb0b3c8724cc</guid><category><![CDATA[주일 칼럼]]></category><pubDate>Sun, 15 Feb 2026 11:56:26 GMT</pubDate><dc:creator>windfiremeguro</dc:creator></item><item><title><![CDATA[2026.02.08 푯대를 향하여(빌3:14)]]></title><description><![CDATA[프랑스의 수학자이며 신학자였던 파스칼은 이런 명언을 남깁니다. “우리의 심령 안에는 오직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빈 공간이 있다”무슨 뜻일까요? 우리의 마음은 늘 무엇인가를 향해 열려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랑일수도 있고 손에 잡힐 뜻한 성공이나 평안한 삶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모든 것들이 충족이 되었다 할지라도 우리 영혼의 심연 속에는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텅 비어있는 곳이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인간은 본능적으로 절대자를 찾아왔습니다. 인류의 역사가 그것을 여실히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세계 어느 곳을 가든 아무리 원시부족이라 할지라도 종교의식이 거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의 악단”이라는 영화에서 나오는 “광야를 지나며”복음성가가 있습니다. 그 가사 중 일부를 소개해 봅니다. “주님만 내 도움이 되시고 주님만 내 빛이 되시는 주님만 내 친구 되는 광야 주님 손 놓고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곳 광야 광야에 서있네”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이 하나님을 간절히 찾게 되는...]]></description><link>https://www.windfire-tokyo.org/post/2026-02-08-%ED%91%AF%EB%8C%80%EB%A5%BC-%ED%96%A5%ED%95%98%EC%97%AC-%EB%B9%8C3-14</link><guid isPermaLink="false">69883d772cdf0885c992300b</guid><category><![CDATA[주일 칼럼]]></category><pubDate>Sun, 08 Feb 2026 07:38:34 GMT</pubDate><dc:creator>windfiremeguro</dc:creator></item><item><title><![CDATA[2026.02.01 주의 뜻을 행하는 교회 (3)]]></title><description><![CDATA[가장 추운 겨울인 1월이 지나고 2월이 시작되었습니다. 메구로 강가에서 묵묵히 겨울바람을 견뎌내고 있는 앙상한 벚꽃 나무들을 보며 소망을 가져 봅니다. 동경의 화려한 벚꽃은 추운 2월에 준비를 시작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겉으로만 보면 아무런 변화가 없어 보이지만 땅 속에서는 이미 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루하루의 삶이 평범하기만 하고 그저 그렇게 지나가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이미 내 안에서 신앙의 성숙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 여기서 이 세대란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삶의 자세를 말합니다. 변화의 시작은 환경이 아니라 마음이라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끊임없는 도전과 변화를 추구하셔야 합니다. 그 목적은 금년 우리에게 주신 표어 말씀처럼...]]></description><link>https://www.windfire-tokyo.org/post/2026-02-01-%EC%A3%BC%EC%9D%98-%EB%9C%BB%EC%9D%84-%ED%96%89%ED%95%98%EB%8A%94-%EA%B5%90%ED%9A%8C-3</link><guid isPermaLink="false">69883d442cdf0885c9922fa3</guid><category><![CDATA[주일 칼럼]]></category><pubDate>Sun, 01 Feb 2026 07:37:43 GMT</pubDate><dc:creator>windfiremeguro</dc:creator></item><item><title><![CDATA[2026.01.25 1월을 보내고 2월을 준비하며]]></title><description><![CDATA[새롭게 시작된 1월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지난 한 달의 시간은 어떠했는지요? ‘주의 뜻을 행하는 교회“(시143:10)라는 표어로 시작된 1월은 결단과 다짐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렇지만 2월을 앞두고 1월을 돌아보면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할지 모릅니다. 정말 그러할까요? 땅에 심겨진 씨앗은 뿌리가 내리고 싹이 나서 열매를 맺기까지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땅 속에서는 이미 새 생명이 자라고 있습니다. 그것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막4:26-27) 예수님의 비유 말씀처럼 하나님 나라는 조용히 그리고 은밀하게 시작됩니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는 “옛 사람”(엡4:22)이 아니라 내면에서 성숙해가는 “새 사람”(엡4:24)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내 영혼에 심겨지면 분명 변화가...]]></description><link>https://www.windfire-tokyo.org/post/2026-01-25-1%EC%9B%94%EC%9D%84-%EB%B3%B4%EB%82%B4%EA%B3%A0-2%EC%9B%94%EC%9D%84-%EC%A4%80%EB%B9%84%ED%95%98%EB%A9%B0</link><guid isPermaLink="false">69883d00babf74b7d0de37a7</guid><category><![CDATA[주일 칼럼]]></category><pubDate>Sun, 25 Jan 2026 07:36:34 GMT</pubDate><dc:creator>windfiremeguro</dc:creator></item><item><title><![CDATA[2026.01.18 주의 뜻을 행하는 교회(2)]]></title><description><![CDATA[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 그 가정의 한 사람이 되어 환영과 축복을 받습니다. 그와 동일하게 한 개인이 거듭나고 구원을 받는 즉시 “주님의 몸 된 지체”(엡5:30)가 되어 교회 구성원으로 영접을 받습니다. 사람들을 그들을 “그리스도인”(행11:26)이라 불렀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게 됩니다. 어느 날 그 분이 내 인생에 찾아오셔서 나를 만나주심으로 내 생각과 내 삶이 바뀌었습니다. 신학에서는 그러한 삶을 성화되어 가는 과정이라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삶을 살아내야 합니까? 금년 우리에게 주신 표어인 “주의 뜻을 행하는”(시143:10)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주의 뜻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은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성경은...]]></description><link>https://www.windfire-tokyo.org/post/2026-01-18-%EC%A3%BC%EC%9D%98-%EB%9C%BB%EC%9D%84-%ED%96%89%ED%95%98%EB%8A%94-%EA%B5%90%ED%9A%8C-2</link><guid isPermaLink="false">69883c23babf74b7d0de35f2</guid><category><![CDATA[주일 칼럼]]></category><pubDate>Sun, 18 Jan 2026 07:32:52 GMT</pubDate><dc:creator>windfiremeguro</dc:creator></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