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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05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리스도 예수의 부활은 신비 중의 신비입니다. 신비를 검색해 보면 “인간의 힘이나 지혜 혹은 일반적인 이론과 상식으로는 이해하거나 설명할 수 없을 만큼의 묘한 현상이나 사실”이라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신비란 무엇일까요?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 이니라”(요일5:11) 영생은 인간의 죽음을 전제로 합니다. 타락한 인간에게 주어진 변치 않는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인간은 죽음을 맞는다는 사실입니다. 그 죽음의 진리를 증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인간은 누구나 이 세상에서 떠나갑니다. 솔로몬은 죽음 앞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향해 이렇게 고백합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1:2) 솔로몬처럼 인생의 허무함을 깨달을 때 진리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습니다. 영생과 부활은 진리를 깨달은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입니
6시간 전
2026.04.04
할렐루야! 오늘은 고난 주간 마지막 토요일입니다 믿음의 선배들은 오늘을 "성 토요일(HolySaturday)"이라 말하며 부활을 준비하는 "침묵과 기다림"의 시간으로 인식해 왔습니다 기독교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성경은 그 비밀인 사랑과 은혜를 이렇게 함축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 사랑을 확증 하셨느니라"(롬5:8) 토요일이 지나면 반드시 일요일이 오는 것처럼 무덤은 부활을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부활은 상징이나 신화가 아니라 실제로 일어난 역사상의 사건입니다. "빈 무덤"(요20:6-7)이 그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고전15:3-8) "게다가 두려워 떨며 숨어있던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자 목숨을 걸고 "예수를 그리스도"(행5:42)라 전하며 증언하는 사람으로 변합니다 부활을 믿는 그리스도인
1일 전
2026.03.29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마21:9)
오늘은 무슨 날일까요?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절정으로 향하는 고난주일입니다. 주님은 자신에게 주어진 최대의 사역인 십자가를 지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십니다. 그것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였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6-8) 십자가는 단순한 종교적 상징을 넘어 인간의 존재와 삶의 방향에 대한 묵직한 답을 제시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능력”(고전1:8)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을 들여다보면 겉으로는 풍요로운 것 같지만 내면은 불안과 상처로 가득합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관계의 단절과 외로움으로 지쳐있습니다. 그것을 한병철 교수는 “피로사회”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높은 실적을 쌓기 위해 스스로 자신을 채찍질하고 있다” 그 결과 인간의 영혼은 점점 더 공허해져만 갑니다. 물질은 우리의 삶을 편안하게 하
3월 29일
2026.03.22 춘분을 지나 봄을 맞으며
지난 금요일(20일)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춘분이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북반구에서 춘분은 봄을 알리는 시점으로 농촌에서는 파종준비를 하게 됩니다. 자연은 춘분을 기점으로 새로운 계절을 시작합니다. 죽어 있는 것처럼 보이던 나무가 새싹을 보이고 있습니다. 금년에도 변함없이 메구로 강가에 봄이 찾아왔습니다. 코로나이후 중단이 되었던 봄맞이 행사를 위해 등불을 설치해 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강변을 따라 늘어서 있는 빨갛고 하얀색이 어우러진 등불이 저를 향해 다시 시작해 보라고 격려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사43:19)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새롭게 하십니다. 겨울 같은 인생에도 봄을 허락해 주십니다. 혹 우리 중에 아직도 겨울을 붙들고 씨름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새로움을 향해 한 걸음 앞으로 내딛는 것입니다. 따뜻한 햇살은
3월 22일
2026.03.15 “난리와 난리의 소문”(마24:6)
지난 2월 28일(토)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에 대한 합동 공습을 감행하므로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세계의 시선이 모두 중동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역사학자들은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말합니다. 로마시대에도 전쟁이 있었고 중세 시대는 물론 근대와 현대에도 전쟁은 계속이 되고 있습니다. 싸움은 싸움을 낳고 전쟁은 또 다른 전쟁을 불러옵니다. 그 전쟁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잘못된 신앙과 종교의 결과이며 또 다른 하나는 인간의 욕심과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비롯합니다. 의로운 전쟁인가? 혹은 불의한 전쟁인가? 라는 평가와 가치판단은 차치하더라도 전쟁은 당사자는 물론 모든 인류에게 큰 피해와 고통을 줍니다. 믿음이 없는 세상 사람들도 오늘날의 세태를 가리켜 말세라 말하고 있고 영적으로 깨어있는 하나님의 사람들도 주님이 오실 때가 과거 어느 때보다도 가까웠다고 이구동성으로 외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세의 징조로 “난리와
3월 15일
2026.03.08 예수 믿는 자의 향기
겨울잠을 자던 동물들이 따뜻한 날씨로 깨어난다는 경칩(3월 5일)이 지나갔습니다. 아직 바람은 차갑지만 그 속에는 분명 봄의 숨결이 실려 있습니다. 자연이 깨어나는 이 계절에 우리의 신앙도 함께 깨어나기를 기도합니다. 땅 속의 생명들이 따뜻한 봄바람으로 꿈틀거리는 것처럼 우리의 영혼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다시 살아나야 합니다. 겉으로는 조금 차갑게 보이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새로운 결심과 기도의 불이 붙었다면 이미 봄이 시작된 것입니다. 조화는 화려하고 아름답게 보이지만 벌과 나비가 찾아오지 않습니다. 향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화려한 곳에는 몰려들지만 향기가 나는 곳에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내면에서 풍겨 나오는 향기보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에 더 마음이 끌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달라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고후2:14)를 풍겨야 합니다. 만약 내 주위의
3월 8일
2026.03.01 교회설립 19주년을 맞으며
할렐루야! 동경 메구로에 바람과 불꽃교회를 세워주시고 오늘까지 함께 해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일본 47개 토후도현에 교회를 세워 나가는 비전과 “주의 뜻을 행하는 교회”(시143:10)가 되기 위해 한 마음으로 달려온 바람과 불꽃교회 가족들에게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흘려주신 피와 땀으로 오늘의 교회가 되었습니다. 교회에 들어올 때마다 여기저기에 스며든 성도들의 간절한 기도와 서로의 아픔과 상처들을 다독여주는 따뜻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언제나 앞장서서 기쁘게 섬겨주신 여러분들께 다시 한 번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교회 설립 19주년을 맞아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를 생각해 봅니다. 진정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롬1:4)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그 복음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바람과 불꽃교회를 세워 주셨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어가며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3월 1일
2026.02.22 언어의 힘
2월 마지막 주일입니다. 2월은 28일로 1년 중 가장 짧은 달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금방 지나간 것 같습니다. 지난주는 한국의 설날 명절로 5일 연휴가 있었습니다. 설날을 맞으면 누구나 만나는 사람들에게 덕담을 건네게 됩니다. 그 말을 들은 사람은 괜히 기뻐집니다. 말은 단순히 소리의 파동이 아니라 누군가의 인생을 망치기도 하고 세워주기도 하는 힘이 있습니다. 말은 물리적인 힘보다 더 강하게 사람을 움직이는 동기가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보이지 않는 흉기가 되어 영혼을 망가뜨리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온순한 혀는 곧 생명나무이지만 패역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잠15:4) 사이가 좋았던 친구관계가 어긋나게 되는 것은 말로 인한 것이 대부분입니다. 말이 주는 상처는 아주 오래갑니다. 그래서 입술의 30초가 가슴의 30년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정적인 언어와 비난은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 전에 먼
2월 24일
2026.02.15 소금과 빛
2월의 중순을 지나자 봄의 기운이 꿈틀거리기 시작합니다. 겨우내 추위로 꼼짝 못하던 땅이 기지개를 펴고 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누구나가 혹독한 겨울을 경험하게 됩니다. 성경에 기록된 ‘믿음의 선진들’(히11:2)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믿는 모든 자의 조상”(롬4:11)이라 불리는 아브라함을 비롯해서 모세와 다윗 그리고 바울도 냉혹한 인생의 겨울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믿음으로 다시 일어섰습니다. 우리의 신앙여정에서도 꼭 필요한 것은 다시 일어 설 수 있는 힘입니다. 그 힘은 단숨에 금방 생겨나지 않습니다.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히12:1)의 삶을 묵상해 보면 하나님의 섭리의 때가 올 때까지 참고 또 참아내며 견디어 냈습니다. 프랑스의 작가이자 언론인이며 비행사였던 생떽쥐페리는 이런 말을 남깁니다. “지도를 보면서 하룻밤을 꼬박 새웠다. 그러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길을
2월 15일
2026.02.08 푯대를 향하여(빌3:14)
프랑스의 수학자이며 신학자였던 파스칼은 이런 명언을 남깁니다. “우리의 심령 안에는 오직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빈 공간이 있다”무슨 뜻일까요? 우리의 마음은 늘 무엇인가를 향해 열려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랑일수도 있고 손에 잡힐 뜻한 성공이나 평안한 삶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모든 것들이 충족이 되었다 할지라도 우리 영혼의 심연 속에는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텅 비어있는 곳이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인간은 본능적으로 절대자를 찾아왔습니다. 인류의 역사가 그것을 여실히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세계 어느 곳을 가든 아무리 원시부족이라 할지라도 종교의식이 거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의 악단”이라는 영화에서 나오는 “광야를 지나며”복음성가가 있습니다. 그 가사 중 일부를 소개해 봅니다. “주님만 내 도움이 되시고 주님만 내 빛이 되시는 주님만 내 친구 되는 광야 주님 손 놓고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곳 광야 광야에 서있네”아이러니하게도 인
2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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